조회 : 10,120
|
(이번호부터 예나의 육아일기를 싣습니다.)
“엄마, 미끄엄틀(미끄럼틀)타러 가자.”
요즘 예나가 자고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말이다. 몇 개월 후에 동생이 태어나면 예나와 밖에서 놀아주기 힘드니 요즘엔 오전 중에 놀이터에 자주 가는 편이다.
한창 비가 오다 날이 개인 9월의 어느 날,
예나를 데리고 놀이터에 가려고 현관 밖으로 나갔다. 현관 바로 앞에는 지렁이 한 마리가 말라 죽어있었다. 평소 벌레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예나가 그 날도 지렁이를 보고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엄마, 버에(벌레)있어.” “응, 이건 지렁이야.”“지엉이(지렁이)!”
이미 말라 죽어 있어 움직이지도 않는 지렁이를 한참 구경한 뒤 놀이터로 가려고 하는데 화단 옆쪽에 흙으로 돌아가지 못한 지렁이 한 마리가 꿈틀대고 있다. 다행히 살아있었다.
“엄마, 지엉이” “응, 지렁이 흙에 데려다 줄까?”하며 그 옆에 버려져 있던 아이스크림 막대기로 지렁이를 들어 화단에 던져주었다. 그리고 “지렁이 안녕.”하며 인사를 하고 놀이터에 가서 신나게 놀고 집에 오는데 현관 앞에 선 예나가 갑자기 울고 불며 떼를 썼다.
“예나야, 왜?”, “놀이터에서 더 놀고 싶어서 그래?” 하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예나는 반응없이 그 어떤 말에도 막무가내로 울기만 했다.
그런데 우는 예나의 시선이 멈춘 곳을 보니 아뿔사 내가 현관 앞에 죽어 있던 지렁이를 밟고 있었던 거였다. 얼른 지렁이에게서 발을 떼니 그제서야 울음을 멈춘다.
“예나야 엄마가 지렁이 밟아서 그래?” “지엉이 바았어(지렁이 밟았어).”
예나에겐 지렁이가 죽었든 살았든 상관없이 내가 지렁이를 밟았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내가 “지렁이야, 밟아서 미안해.”하고 사과를 하니 그제서야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이 사건이 충격적이었는지 예나는 아직도 가끔 그 얘기를 한다.
“엄마가 지엉이 바았어. 예나는 안 바았어. (두발을 쿵쾅쿵쾅 구르며)이케이케 바았어.” 예나가 그렇게 말하면 괜스레 내가 큰 죄를 지은 것 같이 부끄러워져 “엄마가 언제 그렇게 쿵쾅쿵쾅 밟았어. 그냥 꼬리만 살짝 밟았지. 그리고 지렁이한테 미안해 했잖아.” 하고 변명아닌 변명을 하게 된다.
22개월이 된 예나. 점점 기억력도 좋아지고 말도 정확해져 내 행동 하나하나를 보고 배우고 기억해 말하는 모습을 보며 내 몸가짐, 마음가짐을 더 조심하게 된다. 우리 예나가 요즘 내겐 제일 무서운 인생 선생님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