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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의 <세상체험>을 기획하다가 몇 년 전 다녀왔던 바다낚시를 다시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비가 와서 추위에 떨고, 멀미에 시달렸던 그 때의 기억 때문에 잠시 망설였지만 변해가는 부두의 모습을 담아 보라는 선배들의 설득에 그러마고 대답했다.
만석부두의 새벽은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낮에는 조용한 동네에 공장을 드나드는 대형차량들만이 줄지어 다녀 뽀얗게 먼지만 날리지만 새벽에는 낚시를 떠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만석동의 생기 넘치는 모습에 나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왁자한 사람들 사이를 지나 미리 이야기를 해 둔 낚시가게에 가서 인사를 했다.
“이제 오시면 어떡해요? 배가 다 차서 지금은 못 나가요. 아마 오늘이 올해들어 사람들이 가장 많은 날 같아요. 이따 늦게 출발하는 배가 하나 있으니까 그 배에 타세요.”
낚시가게 아주머니는 5시에 도착한 나에게 늦었다며 핀잔을 준다.
하는 수 없이 7시에 출발한다는 배를 타기로 하고 부두 주위를 돌아보며 기다리기로 했다. 아주머니의 말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기 위해 부두 입구에 모여 있었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떠나는 데만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우르릉~ 꽝!’ 갑자기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후두둑거리며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은 이내 장대비가 되어 ‘이번에도 흠뻑 젖은 채 덜덜 떨면서 낚시를 하는 건가’하는 걱정이 커져갔다. 자꾸만 귀 밑에 붙어있는 멀미약으로 손이 가서 잘 붙어 있는지 확인해 보게 된다.
비는 다행히도 배가 출발할 시간 즈음에 멈추었다.
우리가 탄 ‘형제호’는 7시쯤에 만석부두를 출발했다. 달리는 배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바다 곳곳에서 준설작업, 다리건설 등 각종 공사가 진행 중이다.
각종 공사 현장들 사이를 30여 분정도 달려 팔미도 근처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는 이미 몇몇 배들이 자리를 잡고 낚시를 하고 있었다.
함께 배에 탄 낚시가게 아주머니는 “요즘 ‘장대’가 많이 잡히는데 절대 손으로 만지면 안돼요. 쏘거든요. 어제도 한 분이 손으로 만지다가 다쳐서 지혈시키느라 고생 했어요"하며 낚시를 할 때 주의할 점과 기본적인 채비법을 알려주었다.
‘뿌~웅! 뿌~웅!’ 배에서 낚시를 시작하라는 뱃고동이 울린다. 미리 준비해 둔 낚시를 바다에 던지고 낚싯줄을 잡고 흔들면서 손끝에 신경을 모은다.
‘어떤 느낌이었더라... 지난번에 처음 와서 우럭 10마리 정도를 잡았으니까 이번에는 20마리 정도는 잡을 수 있지 않을까’하며 혼자 공상에 빠져 있는데 옆에 있던 아저씨가 게 한 마리를 건져 올렸다.
‘혹시 나도 물었는데 둔해서 잘 모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낚싯줄에 더욱 신경을 모았다. 그 순간 낚싯줄을 통해 떨리는 듯한 약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옳지, 왔구나’ 하며 줄을 잡아 채 빠르게 감아올렸다. 하지만 미끼로 끼워 둔 미꾸라지와 갯지렁이만이 꿈틀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옳지. 왔구나!”낚시대를 당기면 올라오는 건 미끼로 끼워둔 갯지렁이뿐
그렇게 빈 낚싯줄을 감고 풀기만 반복하면서 시간은 자꾸 흘러갔다. 매번 낚싯줄을 감아올릴 때마다 그대로 있는 미끼를 보면서 한 번 확실히 물었다고 느껴질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5분가량 기다리고 있으니 또 다시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다른 때와 달리 낚싯줄을 감아올리는 동안에도 푸드득거리는 느낌이 전해졌다. 건져 올린 낚싯줄에는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우럭이 한 마리 매달려 있었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온 지 약 2시간이 지나 처음으로 우럭 한 마리를 낚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물고기가 낚시를 물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느낌은 여전히 구별되지 않았다. 빈 낚시질 예닐곱 번에 한 번 정도 제대로 물고기를 낚아 오전 내내 잡은 것은 우럭 세 마리. 처음 배에 타며 생각했던 우럭 20마리는 불가능한 꿈이었다.
점심을 먹기 전에 배에 탄 사람들이 건져 올린 물고기들을 모두 모아 회를 먹기로 했다. 모두들 오전에 잡은 고기를 선뜻 내놓았다. 갓 잡은 생선회와 소주 한 잔을 함께 먹으니 이 맛에 낚시를 다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자마자 다시 낚시를 시작했다. 오전에 잡은 것들은 모두 먹어치웠으니 오후에 잡는 것들은 집으로 가져갈 생각이었다. 왠지 오후에는 오전보다 많이 잡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오후에는 우럭을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다. 몇 번의 입질이 있었지만 매번 올라오는 것은 아주머니가 조심하라던 장대뿐이었다. 조심하라는 말에 겁을 먹은 나는 장대가 올라올 때면 간신히 바늘만 빼놓고 아주머니가 아이스박스에 담아 줄때까지 펄떡거리는 녀석이 잠잠해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오후 들어 줄줄이 장대만 잡히는데다 뒤처리를 혼자 할 수 없으니 ‘장대면 차라리 물지 마라’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후 3시경이 되자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한 탓인지 피곤이 몰려왔다. 배 난간에 기대어 낚싯줄을 붙잡고 꾸벅꾸벅 졸다가 결국 아이스박스를 의자 삼아 잠이 들었다.
결국 우럭을 잡아 매운탕을 끓여먹으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집으로 오는 내 손은 빈손이였다.
비록 손에 들려있는 것은 없지만 하루 동안 바닷바람도 쐬고, 낚시도 하면서 쉴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와 기분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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