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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부리 이야기」 “시아버지 덕분에 그(피난) 고생은 덜했지” 
 mansuknews | 07-10-26 21:03
 

내가 원래 태생은 충청도 공주인데 열여섯에 부평으로 시집을 왔어. 부평서 농사지을 적에 육이오를 만났지. 난리가 났으니까 어떡해. 피난 가야지. 그때 우리 집에는 아흔 살 되신 시아버지만 있었고 바깥양반은 제국민병(징용) 끌려 나가고 없었어.
바깥양반은 제국민병 나가고 애들은 6명이 다 또롱또롱 해. 그래도 데리고 피난 나가려고 인제 밤새도록 미싱에 앉아서 버선이며, 방한모자며 만들어 쌓아 놓고, 새벽에 달아나려고 쌀을 씻어 놓고, 술을 한 항아리 해서 아랫목에 싸 놓았어. 시아버지 잡수시라고. 그렇게 해서 갈 준비를 해 놓았는데, 새벽녘에 시아버지가 들어오셔서는 글쎄 ‘느그들은 인제 죽어서나 저승에서 만나자’고 하면서 그 여섯을 다 가서 이마를 대고 우셔 글쎄. 가만히 미싱을 돌리다 말고 생각해보니 거기서 살 거면 여기서도 살고 여기서 죽을 거면 가도 죽을것 같아 그냥 포기를 해 버렸어.
그때 피난 가는 걸 포기를 했는데, 동네 사람들 그때 피난 갔던 사람들은 애도 죽고 오고, 영감도 죽고, 별 사람 다 많아. 나도 피난을 갔으면 그 쫄망쫄망한 애들 여섯을 데리고 얼마나 고생이 될 거야. 그런데 나는 시아버지 덕분에 그 고생은 덜 했지.
집에 있는데 우리 집으로 피난꾼들이 몰려드는 거야. 그때 우리 집이 컸어. 삼십 몇 칸이었으니까. 그렇게 집이 크니까 육이오 때 저기서 넘어온 사람들도 들어오고, 마을 사람들도 들어오고, 그 피난꾼들 저기 하느라고 아주 혼났어.
그런데 하루는 비행기 소리가 앵앵거리고 나더니만 우리 집으로 인민군 네 명이 들어와서는 대청에 자빠져서 숨어 있는 거야. 대청에 자빠져서 있길래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있게 하고 나만 밖으로 나갔어. 나를 보더니 한 놈이 찹쌀이나 술을 달라는 거야. 그래 내가 없다고, 내가 꾀를 내어 ‘서울에서 농사를 지어볼까 하고 작년에 내려와 아직 농토를 못 잡아 농사를 못 지었다’고 했지.
그런데 핑계를 듣더니 나가던 세 명 중 한놈의 새끼가 중대문 안에 발하나, 안마당 쪽으로 발 하나 들이고는 서서 총을 안쪽으로 그어 대는 거야 내가 대청에 서 있는데 말이야. 어찌나 놀랐던지.
그래도 내가 계속 찹쌀도 없고 술도 없다고 계속 얘기하니까. 한 놈이 나가 가지고서는 저기 큰 향나무 있는 집에 술도 있고, 쌀도 있고 하니까 가서 해 오라는 거야. 보니까 그 집은 우리 바깥양반하고 둘도 없는 친구네였어. 그래도 계속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고 엄살을 피웠더니 총을 또 한 번 그어 대더라구 그래서 할 수 없이 술을 가지러 갔지.
그 집에 가니 다들 피난가고 아무도 없어서 술을 퍼 가지고 와서 우리 집으로 와서는 짰지. 술을 짜서 세되를 병에 담아 놓고 양푼에 남아있던 술을 주니께 자기들끼리 마시더라구. 그래서 그렇게 먹고는 인제 죽인다는 말 안하고 총대를 딱 꺾고 어깨에 걸더라고. 그래서 인제 떨리는 게 한시름 놓이더라구 고놈의 총대 꺾는 걸 보니께.
그래서 내가 몸은 피했어. 난리통에도 애들 안 죽이고 말이야. 몇 달 있다가 제국민병 나갔던 바깥양반이 그 동갑내기 친구하고 같이 들어오셔. 원래는 일본에서 인천 하인천에 맥아더 장군이라나 빽아다 장군이라나가 있는데 그때 상륙해서 들어왔다가 저기 충청도 우리 친정오라버니네 있다가 들어오는 거더라구.
그런데 그 동갑내기 친구 분이 며칠 있다가 나를 불러 그래 왜 부를까 하고 가 봤더니 하는 말이 ‘병인네 엄니요 우리하고 무슨 웬수를 져서 피난도 안가시고 집에 계시면서 우리 집에서 명주니, 술이니, 돈이니 그런 걸 다 꺼내다가 인민군 보양을 해 주었냐“고 그러네.
그 소릴 듣는데 막 열이 나더라구 막 사지가 떨리더라구 그 소리를 들으니께. 그래서 사정을 얘기 했지. 인민군들이 중대문에 발 하나 걸고 총을 그어 대는데 그러면 어떻게 안 하냐고. 나 목숨 살기 위해서 해다 주었다고 했지 그러니께 그이가 풀어지더라구.
그래 나 피난 안가서 그런 고통도 받고, 집에서는 피난민한테 볶여 죽겠고. 인민군한테 그냥 죽을 뻔 하고 그 지랄을 했어. 나 아주 고생 폭 했어. <강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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