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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체험」 "굴은 힘으로 까는게 아니야" 
 mansuknews | 07-06-01 12:07
 

새로 칼을 받고 나서는 칼이 부러질까봐 함부로 굴을 까지도 못하고
더욱 끙끙 거리고 있었다.

만석동의 겨울은 굴을 빼 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예전 9번지 길가에는 낮은 지붕을 나란히 한 굴막들이 오종종하게 모여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겨울이 지나면 사라졌다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곳곳에 세워지곤 했던 굴막은 동네에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굴막들이 모여 있는 곳은 43번지 밖에 없다.
지난 1월 18일, 굴이 한창인 요즘 굴막에서의 일상을 체험해보기 위해 43번지 굴막을 찾았다.
이번 겨울부터 43번지에서 굴을 까는 사람들은 구청에서 새로 지은 굴막을 사용하고 있다. 조립식 건물로 지어진 새 굴막은 모두 같은 모양으로 지어져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은 주지만, 예전 굴막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기에는 왠지 낯설었다.
25개의 굴막에서는 모두들 아침부터 나와 굴을 까고 있다. 굴을 까는 일은 굴막 사람들에게 한 해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생계수단이다. 하지만 최근 43번지 굴막에도 굴을 사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43번지 굴막에서 43년간 굴 까는 일로 생계를 유지해 온 김선애할머니는 “예전에야 사람들이 잔치들을 집에서 했잖네. 그래서 잔치에 쓸 굴을 여기 와서 사갔단 말이야. 그런데 요즘은 그런 잔치들을 뷔페에서 하니 굴 사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게야”하고 말했다.
눈에 띄는 큰 변화가 없는 조용한 만석동이지만 굴막에서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고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상상했던 나의 기대는 빗나갔다.
며칠 뒤 직접 굴을 까보기 위해서 43번지의 굴막을 다시 찾았다. 굴막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는 ‘체험’이라는 꼭지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야, 이건 배서(배워서) 뭐에 쓰려구 그러네. 그래도 배겠다면 한 번 해보라. 그거 배주는 일이야 어렵지 않지.”
할머니는 굴을 까보겠다는 나의 부탁에 망설임 없이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내가 굴막에 들어서니 할머니는 작은 밥공기와 칼 그리고 방을 쓸 때 사용하는 쓰레받기에 담긴 굴을 내밀었다. 작은 밥공기에는 깐 굴을 담으라는 뜻인 것 같았다.
“일단 이거나 해보라.”
나는 장갑을 끼면서 ‘밥공기로 하나쯤이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굴막에서 일을 하는 아주머니들을 보면서 일이 그리 어렵지 않게 보였기 때문이다.
칼을 들고 굴을 하나 집어 들어 이리 저리 살피며 어디다가 칼을 대야 하나 생각하고 있으려니 할머니가 옆으로 다가와 알려준다.
“거기, 아니. 그 옆에. 그래, 거기가 굴 눈이야. 굴은 눈을 찾아야 해.”
할머니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칼을 대보지만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번번이 퉁을 놓는다.
굴을 서너 개쯤 까고 할머니가 잠시 옆집에 다녀오는 사이 혼자서 굴눈을 찾아 칼을 대고 굴을 깠다. 하지만 칼은 ‘뚝’소리를 내며 힘없이 부러졌다. 부러진 칼을 놓고 안절부절 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들어왔다. 할머니는 내 모습을 보며 “칼 부러졌으니 오늘 일은 끝이야”하면서 굴막을 나갔다. 내가 무안한 마음에 멍하니 앉아 기다리고 있으려니 할머니는 어느새 칼을 하나 새로 들고 들어온다.
“칼에다가 힘을 주면 칼만 부러져. 요량(요령)으로 일을 해야지, 힘으로 하려고 하면 안 돼”하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칼에다가 힘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굴을 깔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새로 칼을 받고 나서는 칼이 부러질까봐 함부로 굴을 까지도 못하고 더욱 끙끙 거리고 있었다. 할머니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로 굴을 까보면 수월했지만 혼자서는 아직 칼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용케 굴눈을 찾아 굴을 까더라도 굴은 여지없이 두 갈래로 찢어지기 일쑤였다. 아주머니들이 까놓은 굴과 내가 깐 굴은 그 모양부터 매우 달랐다. 아주머니들의 굴은 ‘동글동글’했지만 내가 까놓은 굴은 ‘너덜너덜’했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다른 사람이 할 때는 쉬워 보이지?”
할머니의 말에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잠시 쉬면서 아주머니들이 굴을 까는 모습을 관찰했다. 아무리 봐도 아주머니들이 굴 까는 모습은 쉬워보였다. 아주머니들의 익숙한 손놀림은 수 십 년 동안 굴을 까면서 경험을 통해 체득된 것이었다. 그 손놀림을 하루의 체험으로 따라해 보려는 것은 턱없는 욕심이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굴을 까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면서 굴눈은 간신히 찾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오전 내내 일을 하면서 밥공기 하나를 채우지 못했던 굴 까는 실력은 그대로였다.
“자꾸만 힘으로 일을 해서 큰일이네. 오늘 잘 때 어깨 아파서 잠이 오겠어?”
할머니는 점심을 먹고 난 뒤 칼보다 손힘으로 굴을 까는 나를 보며 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른쪽 손목이 이미 시큰거리고 통증이 생겼다.
할머니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이제 그만 하라”며 더 이상 굴을 주지 않았다. 오후 4시가 다 되어가는 중이었고, 내가 까놓은 굴이 1㎏쯤이 되었을 때였다.
그날 밤 잠을 자려니 할머니의 말처럼 어깨가 아파왔다. 하지만 ‘어구구’ 하고 소리 내는 것조차 부끄러웠다. 그날 내가 본 것은 쉬지 않고 수십 년 동안 그런 일을 해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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