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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in사람」 현승이를 생각한다 
 mansuknews | 06-10-11 10:35
 
지난 5월,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다들 초등학교 1~2학년때 만나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동네친구들이었다. 직장 다니는 놈, 장사하는 놈, 마누라 등쳐먹고 사는 놈, 모두 ‘사는게 힘들다’며 죽는 소리를 해댔지만, 4년만의 술자리는 전에없이 유쾌했다.
우리들의 유쾌함은 ‘누가 더 사는 게 힘든가’로 한참 핏대를 올리고 있을 무렵에 나온 현승이 이야기와 함께 멈춰섰다. “야, 요즘 현승이 바다이야기 개업했다던데.” “바다이야기라니? 걔 횟집 열었대?” “외국 갔다 왔냐? 인터넷 도박장말야. 성인오락실.” “오픈한지 두달만에 본전 뽑고 지금은 돈을 쓸어 담고 있다더라. 얼마 전에 만났는데 정장을 차려 입은 폼이 제법 사장 티가 나던데.” 친구가 전한 소식은, 어머니가 몸져누우면서 돈이 급해진 현승이가 감자탕 집을 정리하고 나서, 주위 사람들과 바다이야기를 열었다는 거였다. 현승이가 인터넷 도박장을 열었다는 사실은 양복을 빼입은 녀석의 어색한 모습과 겹쳐지면서, 내게 적지 않은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현승이는 고등학교 졸업 후, 원하던 대학진학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온 녀석은 야채장사로 근근이 살아가는 집안 사정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었고, 어머니 일을 도와주는 것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현승이를 다시 만난 건 군에서 제대하고 나서였다. 그동안 녀석은 가게도 좀 늘려놓았고 살림도 꽤 나아졌다고 했다. 그리고 몇년 후 재래시장이 위기를 맞으면서 고민 끝에 식당을 개업했고, 두 번의 실패를 거쳐 영등포에서 어머니와 함께 작은 감자탕 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현승이에게선 번듯하게 넥타이를 매고 살아가는 친구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아주 기분 좋은 땀냄새가 났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몸을 놀려 일했고 자신의 노동만큼 돈을 벌었다. 사는게 힘들고 늘 돈에 쪼달렸지만 현승이는 언제나 밝았고 열심히 일하며 사는 자신의 모습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가끔 인천에서 감자탕을 먹을때면 난 후줄그래한 옷에 땀을 뻘뻘흘리며 육수를 끓이고 돼지뼈를 다듬던 현승이를 떠올렸다. 녀석은 항상 그 ‘진한 땀냄새’로 내마음속에 담겨있었다.
“내가 그랬어. ‘이거는 서민들 피 빨아 먹는 거다. 너하고 어울리는 일이 아니다.’ 그랬더니 현승이가 그러더라구. ‘나도 안다. 그런데 지금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서민들 피 빨아먹는 게 어디 이거 하나뿐이냐. 로또니 주식이니 부동산이니 뭐니, 사회가 다 도박 천지 아니냐? 다들 한탕하고 싶어 혈안이 된 세상 아니냐.’ 할 말이 없더라구.”
현승이가 서민들의 피를 빨아먹는 일에 손을 댔다는 사실에, 건강한 녀석의 일상을 피괴한 이 도박천지의 사회에 난 무력감을 느꼈고, 소주잔만 만지작거리다 집으로 돌아왔다. 바다이야기가 철퇴를 맞고 난 지금, 현승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핸드폰에 저장된 녀석의 전화번호를 가끔 들여다보면서도, 난 아직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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