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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부리 이야기」 "공출에 징용에, 왜정말년엔 힘들었지" 
 mansuknews | 05-05-30 12:16
 
우리 고장은 산골이 아니고 그냥 벌판이야. 황해도 연백이라고 하는디 그냥 그냥 벌판이지 저 한 사십리까징도 여름에 들에 일하는 사람들이 하얗게 백로 앉은 것 처럼 뵈였지. 뒷동산도 없었어. 허허벌판에 앞에 쪼끄마한 천배산이라고 하나 있었지.
내 나이 19살에 해산면으로 시집을 왔는데 바다가 껴서 있었어. 그러니깐 나는 바다에서 하는 걸 할 줄 모르잖아 나는 50리 위 벌판에서 살았으니깐. 그래 내 생각에 후담에(나중에) 따로 살면은 조개도 잡아다 먹고 맛도 쒀다 먹고 하겄다해서 펄 일을 배울려고 했지. 근디 집에 일도 많은데 펄 일을 할 줄 나를 그거 하라고 가라고 놔주나 시어머니가. 안 놔주지. 그래 시어머니 몰래 몰래 시누이들 따라서 그 거이 맛을 잡으로 나가는 거야.
그거 몰래 나가서 그거 잡는 걸 밸려고 한 해 한번씩 가면 “맛 구녕 어디야. 이거야, 이거야”하고 물어보고 다녔어. 펄에는 다른 구녕이 똥글똥글한 것이 많거든 그냥 뽕뽕뽕뽕 뚫려진. 잡구녕이 많으니께. “이거야, 저거야”그러면 “아 요거야 요거” 그렇게 알켜주면 그래도 열심히 잡았지.
내가 16년생이잖아. 그때 일정 시대를 한 25살 28살 먹도록 일정 시대를 겪었어. 나 자랄때는 암만 일본놈들이 와서 살아도 세월이 좋았어. 처음엔 간섭은 안했지. 나 쪼끄매서 갓 나서 일본놈들 들어와서 저기 했대는데 그거는 내가 모르잖아.

일본 정치 말년엔 우리가 아주 살기 힘들었어. 공출 자꾸 해가고 방공연습 나오라 뭐 나와라 하고. 바쁜 사람들 농사철이 되어 일 해야 되는데 자꾸 그런거 끌려댕겼지. 일본놈들이 하라니께. 그때 일본놈들이 이리라면 이리고 저리라면 저리고 꼼짝 못했어. 거기시 될 때 한 삼년 앞두고는 되게 힘들었어.
그러니께 점점점점 왜정 말년 적에 그냥 막 공출해 가고 그놈들이 저 싱가폴로 들어갈 적에. 공출 하는 건 쌀로 가져가는 거야. 우리 식량, 열식구면 열식구 먹을 거 그거 남겨 놓고 다 달라는 거지. 그러니께 식구들 넉넉하게 남겨 놓나 아주 빠듯빠듯하게 그냥 모자랄 정도로 남겨 놓고 다 가져간데.
긍게 몰래 감추는 거지. 논 두렁 아래 같은데, 집 뒤에 같은 데자꾸 땅 파고 묻었지.
쌀은 항아리 큰 것들, 쌀 댓가마니도 들어가고 세가마니 들어가고 그런게 있었어. 우리 식구가 12식구였어. 일년 먹을 거면 많았지. 우리 식구하고 일하던 사람들도 먹었어야지. 그러니께 그저 맨날 항아리들 다 그냥 땅속에 묻어서 놓고 쌀을 숨겼지.
그라고 그 수비대들, 전쟁은 안해도 일본사람 군인들인디 말하자면 미군들 와서 여기 와서 사는 식으로 있는 군인들이 있었어. 수비대들 어디매 있다가는 한 축씩 나와서 연습해 총대 매고 말 타고. 그땐 자랄 적이니까 알지 못해도 서울 가는 만큼 길이가 그렇게 늘어섰는지도 몰라. 끝에서 끝도 몰라.
하였튼 한축씩 그렇게 나오면 신작로에 늘어서서 다 말 타고 나오는 거야. 말 타고 나와서 동네에 와서 말들 뭐 콩 같은 것 있으면 말 매기겠다고 달라고 해. 그라면 없는 사람은 못해도 있는 사람들은 다 퍼다 주곤 했어.
거기는 정신대는 없는데 징용으로 많이 갔어. 나보다 한 살 더 먹은 우리 할아버지도 징용으로 뽑혀 갔는데, 우리 집안에서 조카 둘, 동네 사람들 해서 하마 7명인가 징용으로 뽑혀갔어. 징용 간다고 돼지 잡고, 뭐 미수가루하고 엿 고고 다 해서 해가지고 여기 부산까정 왔었어.
우리 동생 남편은 군인 가고 보름만에 815해방이 됐는데, 저기 북쪽으로 들어가서 못 나왔어. 긍께 뭐 여자들 끌어가는거 정신대 말이여 이북에서 그렇게 많이 안 끌어 갔는데, 처녀들은 다 데려간다 하니까 동생 나이 19살에 부랴사랴 신랑 찾아서 시집을 보냈지.
보냈는데 보내고 나니깐 7달 만에 군인을 간거야. 처음에는 동생 남편 군인 안 갈려고 우리는 숨길 자리까정 다 마련해 뒀거든, 자꾸 가면 못 온 다고 말 하는데 보낼려고 그래. 근데 그 신랑의 형이란 것이 군청에 댕겼는데 자기 혼난다고 동생을 못 숨기게 했어. 그러니껜 못 숨고 그냥 갔는데 보름만에 그냥 해방이 됐어. 그로고선 못 나왔지.
해방 되는 날 나 이빨이 그때부터 아프고 해서 뽑았거든 연안읍이라고 하는디 가서 일본사람한테. 뭐 이층에 있는디 뭐이 시꺼만 놈의 비행기가 둥둥둥 냅다 떠 오잖아. 야뜨막하게 남쪽에서 많이 떠오드라고. 근데 뭐 이따만 한 것이 시커먼거이 비행기에서 쑥 나오고 쑥 나오고 그래. 근디 일본사람이 이층에서 내려가더니만 한참만에 올라와. 그래 내가 그게 뭐이 비행기에서 이만큼 한 것이 나왔소. 그게 뭐 댔소하고 물었지.
그러니께는 그 일본 사람은 낙심천만해서 그냥 한숨만 하고 있어.
그래서 왜 그러냐고 그러니께는 삐라가 떨어졌다고 그래. 내가 삐라가 뭐냐고 다시 물으니께는 저기 일본이 손들었데, 손들었데 그래. 손들은게 뭐지하고 내가 물으니께는 “나 일본으로 들어가야 되요.” 그러잖아.
일본 사람들 들어 가면서 되게 울고 들어갔어. 하나도 못 가져 가게 하니까. 저희 살림살이가 아무리 좋고 뭐 좋아도 가져갈 리어커 그것만 가져갔지. 그렇게 삐라가 떨어지면서 해방 된질 알았어. 바로 815일 당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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