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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부리 이야기」 "그땐 왜그렇게 전쟁이 많았는가 몰라" 
 mansuknews | 04-11-12 12:00
 
내가 고향이 제주도여. 거그서 살았응께. 나도 그때 한 16살때부턴가 해녀질 했어. 결혼하기 전이닝께 20살 먹도록 물질했제.
물질하는거 힘들지. 물질 못하는 사람은 얼른 나왔다가 얼른 들어가고, 별로 못 건져내고. 잘하는 사람은 물속에서 숨을 한 번 내 쉴 놈을 더 물속에서 더듬고 댕기니까 잘하지. 그때도 나는 덩치가 쬐금했어. 그래도 물질은 웬만큼 했제.

우리 영감하고는 영감이 23살이고 나는 20살 묵고해서 44년엔가 결혼했어. 우리 영감 큰 누님이 우리 외삼촌네 며느리가 됐어. 사돈이지 그분이 중매를 서서 영감을 만나게 된거여. 우리 영감 처음 만나서는 결혼 안할려고 했어. 사람이 바람둥이 같이 생겨서 싫다고 결혼 안한다고 했제.

진짜 바람둥이 같이 생겼어. 목포에서 전쟁 끝나고 한 10년 쌀장시를 크게 하다가 인천까정 올라온 것도 다 영감이 바람 피워가꼬 그렇게 된거여. 처음 내 말대로 딱 맞아부렀지.

영감이 나이 먹어서 처녀를 뭐 해버렸으니 그 뭐 되어. 그 처녀집에서 잡을려고 하니까 어떻게 할 수 있어야지 배 타서 제주도로 보내부렀지. 그러고 나서도 항구에서 맨날 찾으니 어떻게 대닐 수가 있나. 그래가꼬 제주도에서 목포 뱃전에 내려가꼬 우리 동생들이 있었던 인천으로 바로 영감을 올려 버렸지. 영감 올려보내 불고 나선 집 팔고 그런거 정리하고 인자 살림살이 정리했제.

집을 팔아놓고는 돈 받는 자리에서 얼른 긁어 담았어 잡아 당겼어. 부산으로 부칠려고. 나는 부산으로 뜰려고 영감하고 안 살려고 마음 먹고 있었지. 그란디 우리 큰아들이 돈을 가지고 가서는 여기 은행으로 싹 부처부러. 즈그 아부지 있는디로. 큰아들한텐 못 이기겠더만 그래서 인천까징 온 것이여.

그 때 내가 계속 결혼을 안한다고 한께는 목포에 살고 있던 우리 사촌오빠가 몇 번을 제주도까지 왔다니까. 그래도 나는 계속 안 한다고 했제. 낭중에는 우리 엄마까정 사정을 해서 어떻게 넘어가더라구. 너무 부모말 안 듣는것도 안되겠더만 그래가꼬 결국 결혼을 해 버린거여.

결혼 해 가꼬 살림은 목포에 차렸어. 그때 우리 영감은 배에 댕겼지. 짐 싣고 대니는 큰 화물선에. 제주도로 저 부산으로 그런데로 대니는 배였어. 결혼하고도 친정에 왔다갔다 했어. 그렇게 왔다갔다 하다가 대동아전쟁(김매림 할머니는 43제주민중항쟁을 대동아전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을 겪은 거야.

친정에 갔다가 해녀질을 하러 갔지. 다른 섬으로 가서 해녀질을 하다보니 비행기들이 배를 폭파하는 것을 본거야. 우리는 우리 고향사람들 다 죽었다고 울고불고 그랬지. 그란디 와서 보니 다 산거야. 어떻게 살았냐고 한께 그때 배에다만 그랬다고. 동네 사람들은 비행기가 배를 폭파하고 쏜다고 하니까, 긍께 피한다고 모두 도망간거야 산으로. 이유없이 무조건 산으로들 간거야.

나중에 알고본께 배만 어디로 나가면 다 폭파해 부러라 했나봐. 배만 밖으로 못 나가게 배에 탄 사람들은 다 죽였지. 비행기에서 폭파하고, 비행기에서 다 쏴서 죽였지 그때.
그때는 다들 피난들 갔지. 우리는 피난 안 갔지. 우리 큰 아들 말고 딸 하나 있었는데 죽었거든 그 애기를 대동아전쟁 때 낳았어. 낭중에 우리집 영감이 목포에서 배 댕기다가 왔더라구. 그래 영감하고 다시 목포로 돌아왔지. 그때 배 타는게 무서웠제, 그때는 배 탄 사람은 다 죽였어.

육이오는 목포에서 겪었거든. 육이오 때 밤에 교도소 있던 사람들을 잡아다가 전부 묶어가꼬 트럭에 싣고 물에 빠친거야. 그랑께 송장 때문에 어떻게 주체를 못했어. 바다에 송장 때문에. 빠뜨린 것은 못 보고 밤에 보면 업뜨려 손 묶여가꼬 있거나 서 갔고 있는, 그것은 봤다구. 밤에는 하도 차가 댕겨싸면 나와서 본다고 그래가꼬 그렇게 가더라구.

큰집이 섬에 있었는디, 거기서 배 타고 나오면 막 푸푸 하면서 살려주라고, 묶여서 교도소에 있는 걸 잡아다 물에다 빠뜨리니까 살려달라고 하는 걸 봤다고 해. 다른 사람들이 봤다고 해. 그때 사람들 많이 죽었어. 교도소 있는 사람들 다 죽었어.
우리는 육이오사변 나고 목포에서 그 육도라는 섬으로 그리 피난갔어. 목포에서 배 타고 한시간이나 걸려. 물데로 갔다가 물데로 왔다 하는디 있어. 거기서도 많이 고생했제. 방 한나 얻어가꼬, 노므 밭도 매러 다니고, 돈 벌이 없어 그런거 해주고 곡식 몇 되씩 주면 그거 갖다가 해먹고 그랬지.

육도에 피난가서 한 일년 있다가 도로 목포에 왔제. 오니까 거리에 사람이 없더라니까. 길가에 걸어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어 드문드문. 사람이 그렇게 다 죽고 건물 같은 것도 다 부서지고 모두. 그때도 사람 많이 죽었어.
목포에 돌아와서는 그때 하얀거름 암모냐(비료)를 쌓아 놓았던 데를 다 폭파해 부러서 갑바고 뭐고 터져 나가 덩어리가 남아 있어서, 까끼라는 것으로 파다가 팔아서 생활했어.

그때 우리 둘째가 세 살먹었든가 네 살 먹었든가 덩치가 컸어. 나는 몸이 약하구. 그 놈을 업고 한께 그 경비가 맨 나만 쫓아와 애기 할렁 업고 있으니께 나만 쫓은거야. 그래가꼬 오다가 까끼를 흘려서 그것도 며칠 못댕겼어.

그때 남자들은 잡아갔어 군인들 안 간 사람들은 일하는 사람들 노무자 있잖아. 그걸로 보낸다고 잡아갔다구. 우리집 영감도 그래가꼬 방에다 꼭 숨겨놓고 못 댕겼어.
하이구 그때는 맨 전쟁들만 왜 그리 많이 나든가 몰라. 지금은 진짜 전쟁 없은께 살기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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