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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부리 이야기」 "페인트통에 구멍을 내 골목에서 밥을 했지" 
 mansuknews | 04-10-07 12:48
 
내가 3차 아파트에 들어갔던게 13년전이니까 그 동네 없어진지 벌써 15년이나 되었네.
요앞 신고가도로가 생기기 전에 그 자리엔 하꼬방 집들이 많이 있었어. 내가 그 동네에 처음 들어온 것이 큰딸이 11살 때니까 64년인가 될 거야. 올해 큰딸이 51살 이니까.
그 동네 들어가기 전에는 6.25때 부산으로 피난 내려가 살고 있었어. 그러다 우리 아버지가 만석동에 먼저 와서 자리를 잡은 후에 나도 올라왔지. 와보니 전부 황해도 고향사람들만 사는데 기차 방통에서 떨어지는 석탄을 줍기도 하고, 차에서 퍼서 팔고 그렇게 해 먹고 살고 있었지. 또 요앞 바다에서 꽃게를 잡기도 하고, 나중에는 굴을 까서 팔기도 했었어.
내가 부산에서 올라왔을 때는 집들이 철길 옆으로 쭉 있었고, 가운데로 사람 한명 지나갈 정도의 길이 있고, 집들이 쭉 붙어 있었지. 그리고 바로 옆이 바다였어. 그 뒤에도 바다를 메웠는데, 그 자리에 조금씩조금씩 집들이 또 늘어났어.
새로 집을 지으면 먼저 있던 옆집의 바람벽을 이용해서 집을 지었던 거야. 그렇게 끊어지지 않고 집들을 또 짓고 또 짓고 했지.
벽이 하나니까 옆집의 소리가 다 들렸어. 문 닫는 소리 쿵쿵 다 들리고, 아이들 우는소리 다 들리고 그렇게 살은 거야. 시끄러워도 할 수 없는 거지. 그걸 어떻게 해.
올라와서 우리도 쬐끄만 하꼬방 집을 하나 샀댔지. 그때 1만2천원 주고 샀댔나. 우리집은 아이 4명에 우리 부부까지 전부 6식구가 한방에서 지냈지. 그때는 집집마다 아이들도 많았어. 보통 5, 6명씩 있었으니까.
그래서 동네에 아이들이 많았어. 아이들이 골목에 바글바글 거리면 좁은 골목을 지나다니는데 걸리적거렸지. 한사람만 다닐 만큼 길인데 저기서 오고 여기서 오면, 오고 가질 못했어. 그래서 한사람이 피하면 이짝가고 마저 갔지.
그리고 여름에 더워서 아궁이에 불을 못 때면, 네모난 페인트통 있잖아, 그걸 구멍을 내서 솥을 얹어서 길에 내놓고 밥을 해 먹었어. 밥 다 하고 나면 벽에다 걸어놓았지. 그렇게 집집마다 골목에서 페이트통을 다 내 놓고 불을 피우니 골목으로 사람들이 못 다녔어. 그래서 사람이 지나가면 앉아서 불을 피우다가도 일어나서 비켜주곤 했지.
골목이 좁고 아이들이 그렇게 성화여도 그래도 싸움 같은 건 모르고 살았어. 다 한 집안같이 살았지. 아이들이 자기보다 나이가 조금 많으면 형, 오빠라고 부르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아빠랑 친하면 삼촌, 엄마랑 친하면 이모로 부르며 한 집안처럼 살았어.
집집마다 아이들이 많고, 아이들이 커 가니까 사람들이 하꼬방에 다락을 올리곤 했어. 우리도 밑으로 아이를 하나 더 낳고 큰 아이가 고등학생 때 다락을 올렸어. 그때는 지금처럼 슬레트가 있었나, 다 주위에 있는 걸 주워 다가 집을 지었지. 원목 껍데기 벗겨다 불 땔 때는 원목 큰 걸 껍데기를 한꺼번에 벗길 때가 있었는데, 벗겨놓으면 크기가 꽤 컸어.
그걸 지붕으로 쓰기도 했어. 다락을 얹을 때도 지붕 옆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위에 대를 깔고 나무껍데기를 주워다 바람벽을 세우고 방을 만들었지. 나중에 베니다 같은 걸 주워 다가 새로 고치곤 했지.

“아이들이 골목에 바글바글 거리면 좁은 골목을 지나다니는데 걸리적
거렸지. 한사람만 다닐 만큼 길인데 저기서 오고 여기서 오면, 오고
가질 못했어.”


사는 집이 그러니 화장실이 제대로 있나. 우리는 그때 화장실을 저기 3차아파트 옆 바닷가에 있던 하수구 노깡 위에다 구멍만 내고 쓰고 있었지. 그때 하수구는 저기 자유공원까지 이어져 있던 거야. 하수구라구 해도 바닷물이 들락날락해서 내려다보면 까맣게 밑이 안보였어. 한번은 그 화장실에 외손자가 빠져서 죽을 뻔했었어. 외손자가 다행히 물이 없을 때 빠져 이웃 사람들이 들어가 살려내 올수 있었어. 물이 들어 왔을 때 빠졌으면 살리지 못했을 거야.
엉성하게 집을 짓고 살았지만 그때는 돈이 없으니까 다들 할 수 없이 사는 거야. 그래도 여기는 없는 사람들 그날그날 벌어먹고 살기는 좋았거든. 그 동네에 살던 사람들은 대게 굴 같은 것 해서 먹고살았지. 장사라는 것은 모르고 살은 사람들이야. 그날그날 굴을 까서 팔았지. 옛날엔 하인천에 거기가 시장이 있었어. 거기 가면 중선배들, 안강망들이 있었어. 거기에 장사꾼들이 몰렸어. 굴을 하인천에 가져가면 그 장사꾼들이 샀지.
하인천까지는 철길로 다녔는데, 철로길 사람한테 잡히면 못 가게 했어. 그러면 저기 대한제분 쪽으로 돌아서 댕기고 그랬지. 굴을 골라서 새벽에 갔다가 팔고 와서는 밤에 또 굴을 따러 바다에 나갔지.

그 동네사람들은 피난 와 살아 강하게 살았지.
그래서 화폐개혁 때 그 동네에서 돈이 제일 많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었어. 먹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꾸어서 먹는 걸 몰랐고, 다 자기 벌어 자기 먹고살았어. 그렇게 살면서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은 사람들이야. 그래도 그때는 힘들게 살았어도 재미있게 사는 거였어.
그 동네 없어질 때 시에서 철거하면서 아파트 입주권을 준다며 이사 가라고 해서 하라는 대로 다 했어. 만석 1차, 2차, 3차 아파트로 다들 흩어졌어. 나는 3차 아파트에 들어갔다가 아파트는 자식들에게 주고 여기 43번지에 집을 따로 얻어 나왔지.
그 동네 사람들 인제 아들, 딸들도 다 커서 제각기 떨어져 나가 살고, 그저 노인들 혼자 근처 동네에 살고 있지. 이런 데서는 아이들이 안 살려고 그러잖아. 나도 이제는 어디 다른 곳으로 갈 돈도 없지만, 정이 들어서 딴 데 가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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